2015년 전인지는 한국과 미국·일본을 오가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전인지가 US여자오픈 우승 트로피를 안고 새해에도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박태성 사진작가]키가 1m75cm인 여자골퍼 전인지(21·하이트진로)는 영리한 코끼리가 나오는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을 닮았다해서 ‘덤보(dumbo)’란 별명을 얻었다. ‘덤보’ 전인지는 2015년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미국과 일본을 오가며 각각 내셔널 타이틀을 휩쓸었다. 영어나 일본어는 잘하지 못했지만 그는 화사한 미소를 앞세워 가는 곳마다 ‘덤보 신드롬’ 을 불러일으켰다. 내년엔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투어에 진출할 예정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팜스프링스로 전지훈련을 떠나는 전인지를 최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만나 최고의 한 해를 보낸 소감과 새해를 맞는 각오를 들어봤다.
“2015년이요? 어휴, 이런 시즌이 다시 올 수 있을까요. 올해 성적을 점수로 매기자면 100점 만점에다 보너스 점수를 얹어줘야 할 걸요.”
전인지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올해 7월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 투어 US여자오픈과 10월 일본여자오픈에서 우승했다. 2013년 한국여자오픈 우승까지 합하면 한·미·일 3개국 메이저 대회를 모두 석권한 셈이어서 ‘메이저 퀸’이라는 또하나의 별명을 얻었다. 전인지는 “2015년이 너무 빨리 지나가 아쉽다. 올해 과분한 사랑을 받았는데 내년엔 LPGA투어에서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전인지는 올해 국내외를 오가며 8승을 거뒀다. 한국에서 5승, 일본 JLPGA투어에서 2승, LPGA투어에서 1승이다. 8승 중 메이저 대회에서 무려 5승을 거뒀다. 총 상금 24억7000만원을 벌어들여 한국 선수 중 박인비(27·KB금융·31억8500만원) 다음으로 수입이 많았다.
세계 3대 투어인 한·미·일 내셔널 타이틀을 차례로 석권한 것은 전인지가 처음이다. LPGA는 ‘2016 시즌 주목할 선수’ 가운데 5위로 전인지를 꼽았다. 올해 LPGA투어 신인왕을 차지한 김세영이 4위에 올라 한국 선수 중 랭킹이 가장 높았다. LPGA는 루키 전인지를 ‘US여자오픈에서 최저타 타이기록(272타)으로 우승했고, KLPGA 투어에서 5관왕(대상·상금왕·최저타수상·다승왕·베스트플레이어상)을 차지한 스타’라고 소개했다. 지난해 국내 여자 투어 최고의 자리에 오른 뒤 미국 무대에 입성한 김효주(20·롯데)처럼 벌써부터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고 있다.
2016년 전인지의 또다른 꿈은 8월 리우 올림픽에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하는 것이다. 골프는 1904년 세인트루이스 대회 이후 112년 만에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현재 전인지의 세계랭킹은 10위. 한국 선수 중엔 여섯 번째다. 국가당 최대 4명까지 출전할 수 있기에 먼저 치열한 국내 선발 경쟁을 뚫어야 한다. 전인지는 “경쟁이 치열하지만 LPGA투어에서 활약하면서 랭킹을 끌어올리겠다. 올림픽 선발 과정을 즐기다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인지는 ‘엄친딸’로 불리기도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수학 영재라 불린 데다 용모도 빼어나다. 지성과 미모·기량 등 수퍼 스타의 조건을 두루 갖췄다. 전인지는 “주위에서 머리가 좋아 영어도 잘할 것이라고들 말하는데 반드시 그런 건 아니다. 주위에선 또 영화배우 한가인 씨를 닮았다고도 하는데 고맙긴 하지만 이런 평가도 부담이 된다” 고 말했다.
그는 또 “내년 LPGA투어에 대한 기대가 높은 것도 잘안다. 그렇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올해보다 더 좋은 성적을 올리기는 힘들 것 같다. 목표를 너무 높게 잡으면 부담이 될 것 같아서 일단 상금 순위 10위권 이내에만 드는 걸 1차 목표로 정했다”고 덧붙였다.
전인지는 ‘돌부처’ 박인비가 인정한 강심장이다. 박인비는 “한국을 주무대를 하면서도 미국과 일본 투어에서 좋은 성적을 낸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앞으로 메이저 대회에서의 활약이 더욱 기대된다”고 말했다. 악바리 근성에다 담력까지 갖춘 덕분에 전인지는 프로 통산 12승 가운데 6승을 메이저 대회에서 거뒀다.
전인지는 프로 데뷔 이후 첫 2승을 모두 양잔디가 깔린 골프장에서 거뒀다. 그는 “양잔디에서 ‘손맛’이 더 좋다. 그래서 ‘한국 잔디와는 궁합이 안 맞는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올해는 잔디, 코스와 상관없이 좋은 성적을 냈다.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냈기에 어디서든 즐겁게 경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어는 그의 숙제다. 그는 “학창 시절부터 영어를 싫어했다”고 말했다. 전인지는 “아직까지 영어로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외국인 캐디와 얘기하면서 말문이 조금씩 트이고 있다. 영어 편지를 쓰기도 한다. 내년에 (우승을 많이 해서) 영어 인터뷰 할 기회를 자주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전인지는 또 “아직 한번도 남자친구를 사귄 적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전인지는 “굳이 이상형을 말하자면 키가 크고 쌍꺼풀이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남자친구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호감이 가는 연예인이 있지만 현실적인 상대는 아니다”라며 웃었다.
글=김두용 기자 enjoygolf@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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